5. 18민주화운동기록관 > 탐방단원 조은영

본문 바로가기
광주지방보훈청 보훈창고

탐방단원 조은영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탐방일 : 2021-07-30

본문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KakaoTalk_20210730_232327222_04.jpg

 

KakaoTalk_20210730_232327222_06.jpg

 

KakaoTalk_20210730_232327222_02.jpg

 

KakaoTalk_20210730_232426178.jpg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등장한 군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함과 동시에 붕괴되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를 틈 타 신군부 세력으로 집권화하였다. 민중운동 및 반군부 세력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신군부의 집권으로 인해 억압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활동들은 1980년 5월 초에 절정에 이르러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광주에서는 5월 14일부터 학생들이 광주 도심으로 진출하였고. 시민들과 대규모 가두 정치집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시위가 확산되어 가자 신군부는 5월 17일 오후 7시에 공수부대 투입 명령을 내렸다. 또 5월 17일 밤 11시 40분에 비상계엄령이 18일 자정을 기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고 발표했다. 계엄군으로 파병된 공수여단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무분별한 폭력을 휘둘렀지만, 시민들과 학생들은 무력에 맞서기 위해 전남 지역으로 진출하여 무기를 획득하였다. 시민군으로 활약한 시민들은 21일 계엄군을 후퇴시킴으로써 27일까지 민중 자치가 실현되었지만, 27일 새벽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개시하여 전남도청을 다시 점령함으로써 종결되었다. 2001년 12월 18일을 기준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218명, 행방불명자 363명, 상이자 5,088명, 기타 1,520명으로 총 7,200여 명에 이른다.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내가 태어난 곳이 광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의 폭력적인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맞선 사람들이 계셨다는 것을 기억함과 동시에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성하는 행동이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우)60111 광주광역시 북구 첨단과기로 208 번길 43
Copyright © Ministrt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