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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방보훈청 보훈창고

탐방단원 이서연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탐방일 : 20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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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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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힉생독립운동은 "광주학생항일운동(光州抗日學生運動)" 또는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으로도 불리며

'1929년 11월 광주에서 시작되어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운동으로 3ㆍ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항일운동'으로

민족 차별 교육에서 발단하여 항일 독립 만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높이 39m)은 평면형태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군중이 집합하는 힘을 상징하며,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의 단결된 선열들의 의리를 상징화 하였다고 한다. 원경에는 입석군들의 조화로 타오르는 햇불의 이미지를 갖도록 한 것인데,  특이한 점은 기념탑 입석군 사이에는 관람자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하여 관망하는 기존의 기념탑에 비해 관람자와 함께 호흡하고 체험케하는 기념탑이라는 것이다. 진입 계단 수는 113개로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인 11월 3일을 의미하고 있다.

 

 광주학생운동은 반일민족독립을 절규하던 민족해방운동이었다. 광주학생운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구호, 즉 '약소민족해방만세'·'제국주의타도만세'·'피압박민족해방만세'·'무산계급혁명만세' 등의 구호가 전면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3·1운동 당시의 '조선독립만세' 대신에 '피압박민족'·'약소민족'이란 구호로서 민족해방의 이론적 모색이 한층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식민지노예교육에 반대하고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들의 구체적인 요구를 민족해방이라는 정치적 요구에 결부시키고 있다. 광주항일학생운동은 1920년대 학생운동의 한 정점이었으며,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항일학생운동이었다. 이에 1953년부터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정해 광주학생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있다

기념탑은 불교의 전통적 화강암 탑의 구성을 따랐지만, 전면에 역사적 사건을 시각화한 장치인 청동부조판을 두었다. 가로로 긴 청동판의 좌측에는 궐기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는 분노에 가득한 표정의 남학생, 책을 든 채로 궐기하는 학생 등의 모습을 새겼다. 이는 1929년 10월 30일 통학열차에서 촉발된 역사적인 사건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탑을 방문함으로써 역사적인 현장을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었고, 나와 비슷한 나이 대의 학생들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할 마음으로 운동을 했다는 점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으며 이 시대에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워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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