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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방보훈청 보훈창고

탐방단원 김선중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탐방일 : 2021-06-26

본문

독호민 탐방단 김선중 20216월 탐방기록

 

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독립로 273번길 33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

보훈현장 :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1)가는 방법

 

-광주시내버스를 이용하여 광주학생운동기념탑(매월61, 유덕65, 대촌70, 지원52, 대촌170)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착

-광주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금남로 5가에서 하차하여 2번 출구를 이용, 195m도보로 이동하여 도착

광주제일고교 교정과 연결되어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에 기념탑이 조성되어 있다.

 

2)보훈현장소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하여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독립정신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기념탑이다.

1층 기단 앞쪽에는 궐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조각된 청동판이 있고, 뒤쪽에는 기념탑 건립기가 새겨진 청동판이 있다.

2층 기단 앞쪽에는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탑신의 앞쪽에는 光州學生獨立運動記念塔(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나주역사건

일본인남학생들이 한국인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끌며, 희롱하는 행위에 분노한 한국인남학생과 일본인남학생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여 한국인학생 구타와 일본인학생 보호조치로 사건이 마무리된다.

 

광주학생독립운동

나주역사건(19291030)을 계기로 광주보통고등학교(현 광주제일고),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광주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의 학생들이 참여한 독립만세운동으로

광주학생들의 동맹휴학 및 제 1차 가두투쟁(1929113)과 제 2차 가두투쟁(19291112)으로 전개되었다.

광주보통고등학교(현 광주제일고),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광주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 학생들이 참여하여 식민지노예교육철폐와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하였다.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 항쟁으로, 학생들이 항쟁의 주체였고, 민족의 각 계층에게 성원과 지원을 받아, 전국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 독립운동이다.

 

3)방문소감

 

당시 가두투쟁에서 학생들의 격문에는

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의 자유보장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도 확립

식민지 노예교육의 철폐

민족문화와 사회과학 연구의 자유 보장 등

9개 항목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을사늑약(1905)으로부터 광주학생독립운동(1929)까지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당시의 독립운동을 전개한 학생들은 태어나보니 일제강점기였을 것이다.

, 학생들은 태어나서부터 일제의 황국식민교육, 식민지노예교육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유와 독립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실현하기 위해 독립운동의 전개했다.

또한, 일본인으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고, 이에 항거한다면 불이익을 받을 것을 학생들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당한 일제의 강압에 분노하고 항거했다. 이를 위해 집단적으로 광주시내의 학교들이 동맹하여 행동했다.

이러한 학생들의 독립운동은 계획을 세우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성숙한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시 광주학생분들께 감사함과 존경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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