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탑, 의병장 심남일 순절비 > 탐방단원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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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방보훈청 보훈창고

탐방단원 김선중

현충탑, 의병장 심남일 순절비

*탐방일 : 2021-07-02

본문

독호민 탐방단 김선중 20217월 탐방기록

 

위치 : 광주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보훈현장 : 현충탑, 의병장 심남일 순절비

 

1)가는 방법

-광주시내버스를 이용하여 향교정류장(매월6, 진월7, 지원45, 수완12, 송암74, 대촌170)에서 하차 후, 도보로 7

-광주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금남로 4가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20

향교 뒤편, 광주시민회관 옆에 위치

 

2)보훈현장소개

 

현충탑

-6.25전쟁 당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광주*전남지역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계승하고 애국심을 추앙하기 위해 건립된 기념탑이다.

-현충탑 앞에는 헌화와 분향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작품명은 <영원의 빛>으로 6각형의 기단(탑 밑부분)을 포함해서 25m로 건립되어있는데, 이는 6.25전쟁 당시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기념하려는 의도를 탑의 구조에서부터 담은 것이다.

-현충탑 뒤로는 6.25전쟁의 개요, 6.25전쟁의 역사적 평가, 건립취지문, 작품설명, 헌시, 6.25전쟁 당시 광주*전남지역 전투상황에 대한 설명이 적어져 있다.

 

의병장 심남일 순절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항거하여 의병을 일으켜, 호남지역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수많은 전과를 거두고 순국한 심남일 의병장의 뜻과 행적을 기념하기 건립된 순절비이다.

 

심남일 의병장

본래 성함은 심수택이셨으나, 전남 제일의 의병장이라는 의미로 스스로를 남일이라 하셨고, 당시 사람들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의병을 일으켜, 강진, 남평, 나주 등의 호남지역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과를 올렸다.

일제는 호남 의병들의 체포에 혈안이 되었으며, 이에 남한폭도대토벌 작전이라는 대대적인 의병 체포*사살작전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일제의 남한폭도대토벌 작전에 의해 훗날을 기약하며 의병을 해산하였으나, 끝내 체포되어 순국하셨다.

 

-의병을 일으킬 때 남긴 시

 

초야의 서생이 갑옷을 떨쳐 입고

말을 타고 남도를 바람처럼 달리리

만약에 왜놈을 소탕하지 못한다면

맹세코 모래밭에 죽어 돌아오지 않으리.

 

-체포되어 감옥에서 남긴 시

 

해와 달처럼 밝고 밝던 우리 강산이

갑자기 비린 먼지 속에 묻히고 말았네

맑은 하늘 보지 못하고 지하로 가노니

붉은 피 한에 맺혀 푸른 피 되리라.

 

3)방문소감
광주*전남지역을 차례차례 북한군에게 빼앗기고, 열세였던 우리군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게되고,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광주*전남지역을 수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다.

당시 우리 국군장병들은 전쟁으로 인해 신체일부를 잃고, 전우를 잃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못하면서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군사분계선이 생길 때까지, 실질적인 휴전이 성사되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셨다.

열악한 환경에서 전시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을 희생하신 호국영령과 그 정신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호국영령분들께 감사함을 느끼고 그 분들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국민으로서 자부심 또한 느낀다.

 

심남일의병장이 일제에 항거하여 의병운동을 전개한 것에 그의 행동력을 느꼈고, 일제가 심남일의병장을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남한대 토벌작전을 전개하게 만든 것에 그의 행동이 전략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의병을 일으켰을 때 남긴 시와 체포되어 감옥에서 남긴 시를 통해 항일의지에 대한 그의 절개를 느꼈다.

7월 독호민 사진1.jpg

 

7월 독호민 사진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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