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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방보훈청 보훈창고

탐방단원 김선중

오방최흥종기념관

*탐방일 : 2021-10-23

본문

독호민 탐방단 김선중 202110월 탐방기록

 

보훈현장 : 오방최흥종기념관

위치 :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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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훈현장소개

 

오방최흥종의 일대기

최흥종선생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대후반에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게 된다.

최흥종선생은 청년시절 기독교문물을 선교사들을 통해 접하게 되고, 기독교에 입문하게 된다.

광주제중병원(현 기독병원)에서 나병환자치료에 헌신하였다. 당시 제중병원에 치료받고자하는 나환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많아지자, 최흥종선생은 자신의 땅 1천평을 기증하였고, 1912년 광주시 효천면 봉선리에 한국최초의 나병전문병원인 광주나병원이 개원하게 된다.

3·1운동 당시 전라남도 총책으로 독립운동에 나서 만세시위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3년간 옥살이를 하게된다.

광주 YMCA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문맹률 90%에 달했던 여성과 농민을 위한 야학을 열어 문맹퇴치 운동에 나섰고, 무등산 골짜기에 토담집을 지어 폐결핵 환자들의 마지막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며, 빈민구제를 위한 사회연대 활동을 이끌었다. 일제의 태평양 전쟁으로 의사가 태부족하던 당시,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된 수피아여학교에 100여 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광주의학전문학교'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의전은 1944년 개교한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이다.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 광주지회장을 맡아 일제에 저항하였으며,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회장을 역임하기도 한다.

정부는 지난 1962년 선생의 업적을 기려 애국훈장을 수여했으며, 1986년과 1990년에는 각각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 바 있다.

 

오방최흥종기념관

YMCA 창립 100주년을 맞아 광주광역시와 남구청이 양림동에 오방최흥종기념관을 세웠으며 20191016일 개관하였다.

 

나병환자 구제에 힘쓴 오방최흥종

기독교문물을 유진벨선교사를 통해 접하게 된 최흥종은 1907년 창설된 광주제중원(광주기독병원)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게 된다. 1909년 유진벨선교사의 부탁으로 포사이드선교사를 맞이하러 갔다가 포사이드선교사가 손에 피고름이 가득한 나환자를 위해 손을 잡아주는 것을 보게되었다. 포사이드선교사가 나환자의 지팡이를 가지고 와달라 하였으나 피고름이 가득한 지팡이를 만지는 것에 주저하는 자신을 보며 큰 충격과 감명을 받아 평생을 나병 퇴치운동에 바치기로 마음먹게 된다. 당시 '선교사가 문둥병자를 데려다 치료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양림동은 밀려드는 나환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최흥종은 나환자 진료소 설립을 위해 자신의 땅 1천 평을 기증했다. 최흥종이 기부한 이 부지에 1912년 광주시 효천면 봉선리에 한국최초의 나병 전문병원인 '광주나병원'이 개원하게 된다.

봉선리에 나병원이 설립되자 환자들이 몰려 한때 1천여 명에 달했다. 당시 나환자는 돌팔매질을 받던 기피의 대상이었다. '봉선리 밭에서 난 채소에 문둥이 균이 붙어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곳은 거센 항의를 받는다. 1926년 광주나병원은 여수 애양원으로 이전하게 된다. 1932년 최흥종은 김병로, 송진우, 조만식 등과 '조선나환자근절협회'를 창설한 뒤 그들의 치료와 생계대책을 조선총독부에 요청하였다. 그것이 묵살되자 최흥종은 150여명의 나환자들과 함께 광주를 출발하여 경성까지 걸어간다. 이 소식을 들은 나환자들이 가는 길마다 결합하여 그 수가 계속 불어났다. 11일 만에 경성 조선총독부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5백여 명에 이르렀다. 이를 구라대행진이라고 한다.

그들은 조선총독부 앞에서 7시간 동안 연좌농성을 벌였다. 결국 우가끼 총독은 손을 들고 최흥종과 면담한다. 소록도를 나환자의 수용시설로 할 것, 나환자의 단종 본인 의사와 무관한 불임수술) 폐지에 대한 두 가지 확약을 받아냈다. 소록도에는 나환자 1백여 명을 수용하는 작은 자혜병원이 있었다. 이 병원이 해방 무렵 6천여 명의 나환자들을 수용하는 대규모 치료시설로 바뀌었고, 정부수립 이후 국립 소록도병원이 된다.

 

2)방문소감

방문할 보훈장소를 찾아보다가 생소한 이름이 눈에 띄어 오방최흥종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오방 최흥종이란 분을 초중고교시절 한국사교과목 시간에서는 접할 기회가 없어, 어느 시절에 무슨 활약을 하셨는지도 몰랐었다.

오방최흥종기념관은 비교적 최근, 2019년에 개관하여 개관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오방 최흥종 선생에 대해 조사하고 기념관을 방문하고서 그가 근대 의료, 기독교, 독립운동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기념관에서 최흥종선생의 위상을, 김구선생이 직접 무등산에 있던 최흥종선생을 찾아 대화를 가졌다는것도 알 수 있었다.

김구선생이 최흥종선생과 직접 만나 정치에 뜻이 없다는 말을 듣고 화광동진이라는 호를 전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최흥종선생은 정말 끝까지 일생을 낮은 자의 자세로 헌신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린시절 부모를 여의었으나, 유복한 집안의 자재로 태어났으니 당시 일제강점기시절 친일행위에 적극적이지 않았어도 어느정도 편안한 삶을 살아갔을텐데

나병환자들을 위해, 국가의 독립을 위해, 기독교전파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살아간 최흥종 선생의 처음의 마음가짐과 결단, 그리고 이를 끝까지 실천한 실행력을 본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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